별명 소개
별명은 과거 PC 통신 천리안 시절에(군대 가기 전 케텔도 잠깐 사용했고, 군대에서는 나우누리를 사용했었다. 그때의 별명이거나 1998년쯤에 다시 만들었을 수도 있다.) 만들었을 수도 있지만, 확실치 않다. 최초 시작은 아스라이에서 시작했으나, 무슨 뜻인지 묻는 사람이 많아져서 아.라.로 줄여 부르며 사용했다.
외국인에게 이름을 소개할 때도 편하게 이 별명을 계속 사용하면서 하나의 이름으로 익숙해졌고, 현재는 필명으로 사용하고 있다.
학창 시절
- 1971년 대구에서 태어나 동인 국민학교(아직 국민학교라는 이름이 익숙한 세대이다.), 동 중학교를 거쳐 영신 고등학교에 입학.
- 중학교 때 처음 컴퓨터를 접하고, 프로그래밍에 대해 관심이 많아서 꾸준히 프로그래밍에 대해 스스로 공부했다.
- 인문계 고등학교에 턱걸이로 들어갔으니, 그 시절에는 성적이 중간에 약간 못 미치는 35~45위권(60명 중) 정도였다.
- 고등학교 때는 평균적으로 앞에서가 아닌 뒤에서 1~5위를 다툴 정도였다. 즉, 영어 시험 성적은 20~40점대(성적표에 '가' 표시)였다는 것이 증명된다.
- 이런 성적으로 대학교 갈 수도 없었고, 관심도 없어서 프로그래밍 관련 일을 하려고 계획했었고, 때마침 대구에 경일 전산 인정 직업 훈련원이 생겨서 그곳에 다니게 되었다.
- 컴퓨터와 프로그래밍 관련은 이미 알고 있었으므로 성적은 대체로 무난했다. 단, 영어 과목은 전혀 점수를(각각 C+, D+) 얻지 못했다.
군대에서 (1992년)
- 훈련원을 수료하고, 정보처리기사 2급의 자격증은 땄었지만, 강원도 양구의 보병 부대에 가게 되었고, 다시 하사관에 지원해서 군 생활을 강원도 인제에서 본격적으로 시작.
- 이 무렵부터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아서 점호 시간이 되면 청소 상태나 개인 보관함 정리 상태에 대해 얘기하기보다는 이런 사회 문제에 대해 많은 얘기를 했다.
- 프로그래밍을 스스로 공부해보며 알게 된것은 영어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이었고, 제대할 무렵에는 유학을 계획했었다.
제대 후 (1997년)
- 그러나 컴퓨터 관련 쪽에 손을 놓은 지 너무 오래되었다는 생각에 유학은 포기하고, 컴퓨터 관련 일을 다시 시작하려고 공부를 시작했다.
- 서울에서 당시 유명하던 컴퓨터 관련 학원에 갔다가 퇴짜 맞고, 대구에 돌아와 스스로 준비했다.
- 대구에서 프로그래밍 관련 모임도 만들었으나 큰 활동은 없었고, 그 무렵 PC 통신 천리안의 프로그래밍 관련 동호회에서 활동하다가 알게 된 사람으로부터 같이 일하자는 제안을 받아 일을 시작했다.
IT 관련 회사에서 일하게 됨 (1998년)
- 나름대로는 참 멀고도 먼 길이었다. (중학교때부터 프로그래밍을 공부했으니 말이다.)
- IT 관련 직종의 일을 시작했으나 프로그래밍을 다시 배우는 탓이라기보다는 능력부족으로 회사 일을(정확하게는 프로그래밍 개발) 잘 처리를 못 했다.
- 이 회사가 말레이지아의 모 회사와 수출 계약을 따내면서 프로그램 개발 프로젝트가 시작되었고, 그 탓에 말레이지아로 출장을 몇 번 다녀왔다.
- 회사 직원들 일부는 영어를 유창하게 했다. 들은 바로는 YMCA의 영어 동아리에서 만난 사람들로 고등학교 또는 대학교 때 만나기 시작했고, 그 영어 동아리 모임에서 하는 활동으로 영어로만 대화하는 시간을(원어민 혼자 떠드는 것이 아닌 동아리 회원 한 명도 빠짐없이 대화를 하는 진짜 프리 토킹 시간) 자주 가졌던 것으로 판단할 때 이미 유치원, 초.중학교 때 영어가 유창한 수준(즉, 상대의 말을 알아듣는 수준)으로 판단되었다.
* 말레이지아 출장 때 느꼈던 것은 영어로 대화를 못하니 외국에 나가면 바보가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회사 퇴직 후 어학연수 (2001년 - 31세)
- 요즘은 회사에서 명퇴당했다는 표현을 쓰지만, 솔직하게 얘기한다. 잘린 거다.
- 살아온 과정을 보면 알겠지만, 프로그래밍 쪽은 이미 너무 늦었고, 다른 것을 시작하기에도 늦은 편이었다고 판단했다.
- 컴퓨터 프로그래밍 쪽은 나름대로 많이 공부했음에도 이 정도밖에 안 되는 것을 영어로 판단했기 때문에 돌파구로서 영어가 확실하겠다는 생각에 유학원을 통해 필리핀으로 어학연수를 2001년 4월, 31세의 나이로 시작했다.
- 그 바로 전쯤에 정찬용 씨의 저서 영어 공부 절대로 하지 마라(이하 영절하로 부름)를 읽게 되고, 아이들, 정확하게는 갓난 아기들의 영어 배우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외국 대학교로
- 그리고 귀국 후 몇 달 동안 국내에 머물다가 말레이지아의 국제 대학교(과거에는 보통 international college라고 불렀으나 지금은 말레이지아 정부에서 university college라는 이름으로 변경)의 트위닝 프로그램(대산 유학원의 2009년 말레이시아대학 유학 설명회 개최 글의 하단에 설명되어 있다.)에 다니려고 2002년 8월 말에 말레이지아로 입국.
- 1년 동안 대학교 내의 영어 과정에 다니고, 트위닝 프로그램 중 UEL(University of East London) 대학교의 BIS(Business Information System) 학과에 다녔다.
- 졸업 논문에 낙제해서 다시 하느라 졸업이 늦었고, 성적에 관심이 없었던 탓도 (정확하게는 성적보다 영어에 더 집중했다.) 있어서 평범한 성적으로 2007년 9월 UEL(University of East London) 대학교를 졸업했다.
영어 배움과 해외 수출입 등의 컨설팅에 대한 가능성 발견
- 2005년경 말레이지아에 지사를 둔 스위스계 다국적 기업에 알바를 하면서 통역에 전혀 문제가 없다는 것을 확인.
- 2007년경 한국 회사에서 말레이지아 프로젝트를 위해 통번역을 했고, 이제는 번역까지 전혀 무리가 없다는 것을 확인. 탁월한 협상 능력 발휘/주도적인 프로젝트 진행. 그뿐만 아니라 정확한 해외 시장 분석이 되면서 컨설팅까지도 가능하다는 것을 확인.
아라의 영어 제대로 배우기 블로그
- 아라의 영어 제대로 배우기 블로그를 2005년 7월에 개설해 글을 틈틈이 올렸다. 블로그의 내용은 처음부터 책으로 출판하겠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비록 출판사에 보내지는 않더라도...) 작성했다.
- 졸업 논문 합격 여부를 기다리면서 글을 계속 작성했다.
- 블로그에 대한 부분은 2008년 아라의 블로그 총결산 라는 글을 읽으면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확인 가능하다.
귀국 후
- 원래 계획은 말레이지아에서 취직하거나 다른 나라에서 일하는 것이었지만, 책 쓰기에 대한 욕심으로 급작스럽게 귀국했다.
- 나이 때문에 취직이 어렵다고 생각하겠지만, 어차피 매니저로 가기 때문에 상관 없다. 한가지 아쉬움이라면 트위닝 프로그램의 UEL 대학에 다닐 때 2년을 하고, 마지막 1년을 영국에서 해도 되었지만, 유학 비용 문제로 못 갔다는 것. 아쉬운 이유는 영국에서 대학교를 졸업하면 영국에서 직장 찾는 것이 비자 문제로 월등하게 쉽기 때문이다.
- 2007년 11월 28일 귀국을 했고, 긴 기간 동안 놀면서 한국에 적응했다.
현재 하는 일
- 백수. 여기서 알아야 할 사항. 일이 없어서 백수가 아니라 수익이 없어서 백수라는 뜻이다.
- 여러 개의 블로그 운영 중
- 유료 홈피와 컨설팅 준비 중 (나중에 자세히 설명할 것임)
수정: 2009.2.4. 23:01, 추가: 2009.2.14 01:17, 표현 약간 수정: 2009.6.29 11:41